좋은 글은 우리를 위로하고 때로는 무뎌진 감성을 깨워줍니다. 바쁜 일상에 마음의 양식을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구민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그 놈의 밥
박찬명(가정2동)
알맞게 잘 쪄진 호박잎 쌈과 강된장, 된장찌개 그리고 오이지무침으로 오랜만에 맛있게 먹은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아내가 입을 열었다.
“3~40대 때는 퇴근해 오는 남편과 학교 갔다 오는 아들 생각하며 시장 다녀오고 요리하고 밥상을 차리는 게 참 즐겁고 행복한 일상이었는데, 요즘은 밥하기가 점점 싫어지니 어떻게 하죠?”(참고로 마누라님은 작년부터 갱년기를 심하게 겪고 있다. 무섭다.)
“뭘 어떻게 해? 김치찌개 한 솥 끓여서 며칠 먹고, 곰국 끓여서 일주일 먹고, 그것도 하기 싫으면 마트 음식, 배달음식, 시장 반찬가게 음식으로 때워야지”
하며 해결 방법이 분명 아닌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였다. 하기야 삼십 년 넘게 밥을 해 왔으니 지겨울 때도 됐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넘쳤다. “이제 매 끼니 대충해 먹고 삽시다.”
별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은 얘기만 주고받는데 아들이 퇴근해 들어왔다. 우리 집 상전... 나보다 차원이 다른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엄마 나 저녁 안 먹었어.” (아주 당당하다. 난 9시 넘으면 알아서 먹고 들어온다. 밥 달란 얘기 절대 못 한다.)
“알았어. 배고프겠다. 엄마가 빨리 오징어볶음 해줄 테니까 샤워 먼저 해.”
조금 전 밥하기 싫다고 얘기할 때와는 다르게 대답이 어찌나 리드미컬하고 생기가 있던지 순간 직감했다. 조금 전 밥하기 싫다는 얘기에 단어가 생략된 게 분명하다.
“아들 밥하는 건 지 금도 행복한데 당신 밥하는 건 점 점 귀찮아지니 어떻게 하죠?”
아마 30분 정도 나눈 대화의 실체는 내가 생각한 게 팩트일 것이다. 나이 60을 넘어 세상만사에 무뎌져도 아직 이 정도 눈치는 남아 있다.
봉숭아와 우리 할머니
황덕순(석남2동)
나 어릴 적 이맘때면 언제나 시골집 마당 한 귀퉁이 꽃밭에는 봉숭아가 있었다. 할머니께서 봄부터 가꾸신 것이다. 진한 분홍색, 주황색, 하얀색 꽃들이 예쁘게 핀다. 우리 세 자매는 할머니를 조른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 달라고...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우리들 은 마당 한가운데 있는 평상에 둘러앉는다. 할머니는 옛날이야기와 함께 하나하나 정성스레 손톱에 봉숭아를 얹고 야무지게 묶어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빳빳하게 풀 먹인 삼베 홑이불을 끌어당겨 덮고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본다. 가끔 부엉이와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막냇동생은 무섭다고 할머니 품으로 파고든다. 깜깜한 하늘에 수억만 개의 별들이 쏟아진다. 은하수였다. 북두칠성도 보인다. 우리는 별을 세다 잠이 든다. 모기를 쫓는 할머니의 부채 바람을 자장가 삼아서...
그런데 한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내가 어느새 그때의 할머니가 되어있네. 예쁜 내 손녀들에게도 봉숭아 추억을 만들어 줘볼까? 꽃잎을 따고 백반도 넣고 소금도 조금 넣고 할머니의 사랑까지 듬~뿍!! 곱게 빻아서 봉숭아 꽃잎보다 작은 고사리 손톱 위에 조심조심 묶어 주었다. 너희들 이다음에 어른이 됐을 때 오늘 밤 이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해 줄 거니? 기왕이면 예쁜 할머니로 기억해 주렴. 봉숭아 꽃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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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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