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우리를 위로하고 때로는 무뎌진 감성을 깨워줍니다. 바쁜 일상에 마음의 양식을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구민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작품을 공개합니다.
사랑으로 크는 아이들
이화실(청라라임로)
스물여덟.. 후.. 스물아홉.. 서..른.. 헥헥!! 저녁식사를 일찍 마친 한가한 오후에 딸이 운동을 하고 있다. 방금 TV 에서 본 변형된 플랭크 자세를 보고 도전해본 것인데, 보았던 자세랑은 아주 다르다. 팔은 찰랑 찰랑 춤을 추고 다리는 달달 떨리고 허리는 바닥에 닿을까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서른 개나 하려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머 정말 잘한다!!!! 30개나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하는 칭찬의 말이 절로 나왔고 아이가 마음으로 뿌듯해 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당신이 직접 간판도 만들어 달고, 유리창에 선팅도 하고, 책장도 조립하고 해야 할 것이 많아서 항상 손이 부족했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린 딸의 도움이라도 천군만마였던 것일까. 내가 선을 하나 그리거나, 나사 하나를 조여도 항상 "화실이 정말 잘하네, 아빠보다 낫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아서 나는 아빠 일을 종종 도왔던 것 같다. 그리고 작은 일을 도와주고 받은 큰 칭찬과 성취감은 내안에 자신감과 당당함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믿음과 격려로 자란 나는 큰 상처를 받지 않는 성격으로 평탄하게 잘 지내며 지금은 믿음직한 남편과 예쁜 9살 딸과 살고 있다. 아이의 작은 행동에 칭찬을 하는 나를 보면서 어린 시절 내 부모님의 마음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응원하고 격려해주신 부모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나도 내 딸에게 주고 있다. 내가 주는 좋은 말들이 내 딸의 마음속에도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자리 잡아 우리 아이가 외부에서 상처받는 일이 없이 내면이 단단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은 아빠가 생각나는 저녁이다. 5월이 가기 전에, 엄마를 모시고 아버지 묘소에 꽃 한 송이 두고 와야겠다.
계절의 잔칫날에....
안미순(크리스탈로)
온갖 싱싱함이 서로 어우러져서,
열정의 초록들로 마냥 펄떡거리는 이 계절의 잔칫날,
흥겨운 잔치 집 대문을 호기롭게 들어서는 손님처럼
호탕하게 인사하는 바람의 호들갑스러움에
나무는 좌우로 유쾌하게 몸을 흔들며,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현하고,
덩달아 신이 난 나뭇잎들은
들판을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왁자지껄 몸을 부비적거리며 조잘거리네
큰 나무아래, 소담하게 무리지어 피어있는
연보라 빛 라일락은 잔칫날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듯이
구름도 바람도 잠시 쉬어가라고 툇마루 같은
향기의 뜨락을 우아하게 내어주며 지긋이 미소 짓네
이미 지나버린 내 청춘처럼 풋풋함이 솟구치는 세상의 풍경은,
앞마당 지붕 꼭대기까지 나부끼는 하얀 천막 그늘아래,
멍석 깔린 바닥에서, 풍성하게 차려진 잔칫집 음식상을 대접받고
그저 감사함과 흐뭇함에 겨운 소박한 동네 사람들의 미소처럼,
호사스럽지 않은 계절의 싱그러움이 마구 충만하여
하늘은 유난히 드높게 푸르고,
햇살의 용맹스런 열정은 점점 더 흥이 무르익어가네
아내의 장아찌
민복기(염곡로)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어렸을 때랑 다르게 이런저런 것들이 변하게 마련인데 그중에 하나가 입맛이 아닌가 합니다. 고기반찬 좋아하고 모든 게 귀했던 시절 가끔씩 식탁에 올라오는 소시지, 햄 같은 반찬에 너무 행복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찬밥에 마당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에 강된장만을 얹어 드시며 연신 맛있다며 한입 먹어 볼래 하며 주시던 쌈은 당시엔 그 투박하고 찝질한 맛만이 기억될 뿐 ‘도대체 뭐가 맛있다는 거야’하며 한입 받아먹고는 더 주실까 슬그머니 도망쳐 버리곤 했죠. 헌데 어른들이 맛나다며 드셨던 그런 음식들이 요즘 들어 내 입맛에도 살며시 스며들더군요.
얼마 전 아내가 어쩌다 한 번씩 만들던 장아찌를 올해는 무슨 바람이 들어 이것저것 만들어 내며 식탁에 올립니다. 방풍나물이며, 두릅, 명이나물, 두릅처럼 생겼는데 처음 맛보는 눈개승마라는 놈까지... 전에는 식탁의 주변 반찬으로 어쩌다 한 번씩이나 손이 가던, 때론 아예 눈길조차 주지않던 반찬이 올 들어 이상하게 새롭게 다가옵니다. 종류별로 느껴지는 식감과 향은 별다른 반찬 없이도 몇 가지 장아찌만으로도 식탁이 풍성하게 느껴지더군요. 아내에게 너무 맛있다며 밥 한 공기를 오롯이 장아찌만으로 해치우고 솜씨칭찬을 해주니 매년 해주던 장아찌 별게 있냐면서도 잘 먹는 모습이 좋아 보였던지 다른 것도 해주마 하는데 그 말 한마디에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나이 들어감으로 밀려드는 세월의 서운함이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야 알 수 있는 소소한 느낌도 있음을 장아찌 하나에 깨달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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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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